모로이 사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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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로이 사부로는 일본의 작곡가, 음악 교육가, 저술가이다. 도쿄 출생으로, 도쿄 제국 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베를린 고등 음악 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1927년 음악 단체 '술랴'를 결성하고, 1931년 신흥 작곡가 연맹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1936년 하계 올림픽 예술 경연에 작품이 참여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후에는 교육과 저술 활동에 전념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교향곡 1번, 2번, 3번 등이 있으며, 제자로는 단 이쿠마, 임원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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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이 사부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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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원어 이름 | 諸井 三郎 |
로마자 표기 | Moroi Saburō |
출생일 | 1903년 8월 7일 |
출생지 | 도쿄 |
사망일 | 1977년 3월 24일 |
직업 | 작곡가 |
학력 | 도쿄제국대학 베를린 예술대학교 |
자녀 | 모로이 마코토 (작곡가) |
2. 경력
도쿄 제국 대학 문학부 졸업 후 독일 베를린 고등 음악 학교에서 작곡과 관현악법 등을 공부했다. 귀국 후 작곡가로 활동하며 1936년 하계 올림픽 예술 경연에 참가하고[1], 1937년 신향(新響) 일본인 작품 콩쿠르에서 『피아노 협주곡 다장조』로 입선하는 등 성과를 거두었다.
1944년 일본 제국군에 징집되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으며, 전후에는 작곡 활동을 줄이고 교육과 음악 이론 저술에 힘썼다. 1946년 문부성 사회교육 시학관으로 임명되어[2] 일본의 음악 교육 과정 개편에 참여했으며, 특히 기악 교육 도입에 기여했다.
이후 도쿄 교향악단 음악 감독(1965년~1976년)과 센조쿠 가쿠엔 대학 음악학부장(1967년~) 등을 역임하며 음악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그의 제자로는 단 이쿠마, 시바타 미나오, 야시로 아키오, 한국의 지휘자 임원식 등 많은 음악가가 있다. 그의 아들 모로이 마코토 역시 작곡가이다.
2. 1. 초기 생애
도쿄부(현 도쿄도)에서 태평양 시멘트 창업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도쿄 고등사범학교 부속 초등학교(현 쓰쿠바 대학 부속 초등학교)를 거쳐 동 부속 중학교(현 쓰쿠바 대학 부속 중학교·고등학교) 재학 중 피아니스트를 꿈꿨다. 부속 중학교 동급생으로는 훗날 도쿄도 지사가 되는 미노베 료키치, 닛신 제분 명예회장 쇼다 에이자부로, 도쿄 대학 명예교수 기시모토 히데오, 독일 문학자 하가 단 등이 있었다.1921년 부속 중학교를 졸업하고 구제 우라와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하기와라 에이이치에게 음악을 배웠다. 이후 도쿄 제국 대학 문학부 미학미술사학과에 진학하여 1928년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에는 빌리·발더스와 레오니트 코한스키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며[2], 작곡은 독학으로 공부했다.
1927년에는 음악 단체 '술랴'(Surya|술랴eng)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이 단체 이름은 인도 신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이마히가시 코·쿄데 우미 형제의 아버지인 이마 타케히라가 지었다[3]. 모로이는 이 활동을 통해 가와카미 데쓰타로, 미요시 타츠지, 고바야시 히데오, 나카하라 주야, 오카 쇼헤이 등 문인들과 교류했다[4]. 1931년에는 우치우미 세이이치로 등과 함께 신흥 작곡가 연맹에 가입했으며[2], 도쿄 고등 음악 학원(현 국립 음악 대학)에서 작곡을 가르치기도 했다[2].
1932년부터 1934년까지 독일로 유학하여 베를린 고등 음악 학교에서 공부했다. 이곳에서 레오 슈라텐홀츠와 막스 트라프에게 작곡을, 발터 그마인들에게 관현악법을, 루돌프 슈미트에게 피아노를 사사했다. 모로이는 자신의 본격적인 창작 활동이 베를린 유학 시절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1934년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작곡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1936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 예술 경연의 음악 부문에 출품되기도 했다.[1] 1937년에는 제1회 신향(新響) 일본인 작품 콩쿠르에서 《피아노 협주곡 다장조》가 입선하는 등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갔다.
2. 2. 음악 활동
도쿄 제국대학 문학부에 재학하며 작곡을 독학했고, 빌리 바르다스(Willy Bardas)와 레오니드 코한스키(Leonind Kochanski)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1927년에는 음악 단체 '수리야(Surya)'를 결성하여 가와카미 테츠타로(河上 徹太郎), 미요시 타츠지(三好達治),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나카하라 추야(中原中也), 오오카 쇼헤이(大岡昇平) 등과 교류했다.1932년부터 1942년까지 독일로 유학하여 베를린 예술대학교의 전신인 베를린 고등음악학교에서 레오 슈라텐홀츠(Leo Schrattenholz), 막스 트라프(Max Trapp), 발터 그마인들(Walter Gmeindl)에게 작곡을 사사했다. 모로이는 도쿄 음악계에서 '수리야' 등을 통해 활동했지만, 스스로는 본격적인 창작 활동이 베를린 유학 시절부터 시작되었다고 여겼다.
1934년 일본으로 돌아온 후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그의 작품은 1936년 하계 올림픽 예술 경연의 음악 부문에 출품되기도 했다.[1]
1944년 교향곡 3번을 완성한 직후 일본 제국군에 징집되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전후에는 주로 교육과 음악 이론 저술에 집중했으며, 이후 약 30년간 교향곡 두 편을 포함하여 단 8개의 작품만을 작곡했다. 말년의 작품에서는 12음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의 제자들은 다음과 같다.
이름 | 비고 |
---|---|
단 이쿠마 | 작곡가 |
미키 토지로(三木鶏郎) | 작곡가 |
이치카와 토시하루(市川都志春) | 작곡가 |
이리노 요시로 | 작곡가 |
토다 쿠니오(戸田邦雄) | 작곡가 |
시바타 미나오 | 작곡가 |
오자키 소키치(尾崎宗吉) | 작곡가 |
야시로 아키오 | 작곡가 |
키노시타 츄지(木下忠司) | 작곡가 |
임원식 | 한국의 지휘자 |
그의 아들인 모로이 마코토 역시 작곡가로 활동했다.
2. 3. 교육 및 저술 활동
모로이는 도쿄 제국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작곡을 독학했으며, 1932년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레오 슈라텐홀츠와 발터 그메인들에게 사사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항복 이후에는 교육과 음악 이론에 관한 저술에 전념했다.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제목 | 출판사 | 출판 연도 |
---|---|---|
기능 화성법 | 古賀書店일본어 / 음악지우사音楽之友社일본어 | 1941년 / 1954년 |
스코어 리딩 (교열) | 전음악보출판사全音楽譜出版社일본어 | 1963년 |
모로이는 교육 활동을 통해 많은 제자를 길러냈는데, 주요 제자는 다음과 같다.
모로이 사부로는 구세대 일본 작곡가들이 가곡이나 오페라 중심의 창작 자세를 선택한 것에 반발하여, 베토벤에 깊이 심취했으며 악상의 추상적인 전개를 추구하는 기악곡 작곡가를 목표로 했다. 특히 소나타 형식이나 푸가를 포함한 대규모 형식의 악곡을 많이 작곡했다. 야마다 고사쿠가 스크랴빈을 경험하면서도 낭만주의로 회귀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모로이 사부로는 신고전주의 자세를 견지했으며, 문하생들이 더 급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도 관대했다. 베토벤에 관한 어린이용 전기를 집필했으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악보를 교정하기도 했다.
모로이 사부로는 교향곡, 관현악곡, 협주곡, 실내악, 피아노곡, 성악곡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많은 작품을 남겼다. 자세한 작품 목록은 아래 각 장르별 섹션을 참고하라.
그의 아들 모로이 마코토 역시 작곡가이다.
3. 작풍
작곡가를 지망하게 된 계기는 도쿄 고등사범학교 부속 중학교 3학년 때, 피아니스트 고쿠라 스에코의 올 베토벤 프로그램 피아노 리사이틀을 접하고 감명을 받은 것이었다. 이후 독학으로 작곡을 시작했고, 20대에 결성한 음악 그룹 '술랴'가 개최한 일련의 발표회에서 자작곡을 잇따라 공개적으로 발표했다[6]. 쇼와 초기의 당시에는 이른바 '양악계 작곡가'의 존재가 아직 드물었기 때문에, 그의 활동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7]. 이 시기의 작품은 베토벤, 브람스, 프랑크 등의 영향을 받았다.
독학에 의한 탐구는 한계에 부딪혔고, 1933년(쇼와 8년)에 베를린으로 유학했다. 유학 중에 서구에서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음악의 영향을 받아, 조성이 있지만 비기능적인 화성법을 사용하는 다소 난해한 작풍을 띠게 되었다. 유학 중 졸업 작품으로 작곡하여 현지에서 초연된 '교향곡 제1번'(1934년)을 거쳐, 귀국 후 발표된 '교향곡 제2번'(1938년), '바이올린 협주곡'(1939년), '현악 육중주곡'(1941년), '교향적 2악장'(1942년) 등 연이어 발표된 대작들은 일관되게 이러한 특징을 지닌다. 당시 전쟁으로 치닫던 사회 상황 역시 작품의 난해함을 심화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1943년의 '어린이를 위한 소교향곡'을 기점으로, 이전까지 그의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일본적이고 서정적인 작풍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1944년에 작곡된 '교향곡 제3번'은 그가 전쟁으로 인한 죽음을 각오하고 유서처럼 쓴 대작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최종악장 '죽음에 관한 제관념(諸観念)'에서 고뇌를 거쳐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음악은 깊은 감명을 준다. 2004년에는 나소스에서 이 곡의 CD가 발매되었다(지휘: 유아사 다카오).
전후 작곡 활동은 활발하지 않아, 1945년부터 사망한 1977년까지 32년 동안 단 8곡만을 남겼다. 그 이유로는 '교향곡 제3번' 작곡으로 창작 에너지를 소진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1951년의 '교향곡 제4번'은 당시 일본에 유입되기 시작한 러시아 음악의 소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하여 '교향곡 제3번'과는 대조적으로 명랑하고 쾌활한 분위기를 지닌다. 또한 만년인 1977년에 작곡된 '피아노 협주곡 제2번'에서는 제자들(이리노 요시로, 시바타 미나오)과 아들(모로이 마코토)보다 수십 년 늦게 12음 기법을 시도했으며, 작품 수는 적지만 새로운 음악적 경지를 개척하려 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작곡 활동이 뜸해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저술가로서의 활동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1946년부터 20년 동안 평균적으로 연 2권의 저서를 출판할 정도로 저술 활동에 힘을 쏟았다.
4. 주요 작품
4. 1. 교향곡
4. 2. 관현악곡
4. 3. 협주곡
4. 4. 실내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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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작품 번호 | 작곡 연도 |
---|---|---|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번 | 1927년 | |
피아노 삼중주 B단조 | 1927년 |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번 | 1927년 | |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2번 | 1928년 | |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3번 | 1929년 |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2번 | 1929년 | |
피아노 오중주 | 1930년 | |
현악 사중주 | Op. 6 | 1933년 |
피아노 사중주 | Op. 9 | 1934년 |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 Op. 11 | 1935년 |
첼로, 비올라 다 감바, 하프시코드를 위한 삼중주 | Op. 13 | 1936년 |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 Op. 15 | 1937년 |
현악 육중주 | Op. 17 | 1939년 |
현악 삼중주 | Op. 19 | 1939년 |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 Op. 32 | 1977년 |
4. 5. 피아노곡
모로이 사부로는 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특히 피아노 소나타는 총 10곡을 작곡했는데, 작곡 시기에 따라 초기 3곡(1920년~1923년), 번호가 매겨진 5곡(1927년~1931년), 그리고 작품 번호가 부여된 2곡(1933년, 1940년)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외에도 모음곡, 전주곡 등을 작곡했다.주요 피아노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
구분 | 작품명 | 작품 번호 | 작곡 연도 |
---|---|---|---|
초기 소나타 | 소나타 | - | 1920년 |
소나타 | - | 1922년 | |
라단조 소나타 | - | 1923년 | |
번호 소나타 (1차) | 소나타 1번 라장조 | - | 1927년 |
소나타 2번 내림 A단조 | - | 1927년 | |
소나타 3번 | - | 1928년 | |
소나타 4번 | - | 1929년 | |
소나타 5번 | - | 1931년 | |
번호 소나타 (2차) | 소나타 1번 | Op. 5 | 1933년 |
소나타 2번 | Op. 20 | 1940년 | |
기타 피아노곡 | 프렐류드 前奏曲|젠소쿄쿠일본어 | - | 1930년 |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ピアノのための組曲|피아노노 타메노 쿠미쿄쿠일본어 | - | 1942년 | |
피아노를 위한 전주곡과 알레그로 조코소 前奏曲とアレグロ・ジョコーソ일본어 | Op. 30 | 1971년 |
4. 6. 성악곡
- 春と赤ん坊|하루토 아칸보일본어
* 妹よ|이모토요일본어나카하라 주야 소프라노, 오케스트라 1977년 遠き山見ゆ|도키 야마 미유일본어 (Op. 33) 미요시 다쓰지 성악, 피아노